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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7월 한국농어촌공사 사내방송 : AI로 재구성한 농어촌공사 100년사 (2편)
  • 작성부서|홍보실
  • 작성자|홍종휘
  • 등록일|2025-07-16
  • 조회수|62
방송일 2025-07-17 관련사업 기타
키워드 캠페인 테잎번호 2025071601
사이버 홍보 노출 여부 노출 (KRC 뉴스)

* 7월 17일 사내방송, AI로 재구성한 농어촌공사 100년사


나레이션)


광복의 기쁨도 잠시,

한국 농촌은 폐허 위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그 복구의 이야기.

“폐허 위에서 다시 희망을 노래하다.”


1945년 광복 이후, 농지는 갈라지고, 수리시설은 폐허가 되었으며

농민들의 삶은 극도의 빈곤과 불안 속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물이 없으면 쌀도 없고, 쌀이 없으면 생존이 없었습니다.


당시 한국농어촌공사의 전신인 수리조합연합회와 농지개발영단은

절망 속에서도 수리사업의 불씨를 되살리기 시작합니다.


미군정의 지원 아래, 원조 장비와 물자가 들어오고

불도저와 중장비가 다시 논밭 위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1947년, 조선농지개발영단은 토지개량 기계공장을 설립하고

농민과 함께 무너진 둑과 저수지를 다시 쌓아 올립니다.

이 모든 수리사업은 식량자급을 위한 절박한 생존의 사투였습니다.

하지만 1950년, 한국전쟁은 또 한 번 농촌을 잿더미로 만들었습니다.


1953년, 전쟁이 끝나고 우리는 다시 땅을 일으켰습니다.

미국 ICA 원조를 받아들여 전국의 수로, 양수장, 저수지 복구를 본격화하고


1957년 정부는 ‘식량증산 5개년 계획’을 발표합니다.

당시 수리조합은 전국 600여 개소에 달했고,

공사는 관개면적 확대와 양수장 건설, 간척지 개간, 저수지 복구 등

농업 기반 복구의 최전선에 서 있었습니다.


1960년대, 정부는 수리사업을 제도적으로 정비합니다.

<토지개량사업법>, <개간촉진법> 등을 기반으로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수리사업 체계를 마련합니다.


또한 수백 개에 달하던 수리조합을 통합·합병하며

전문성과 행정 효율을 높였습니다.


그리고 1965년, 전천후 농업용수원 개발계획이 수립되며

공사는 총 38만 헥타르의 신규 농지 개발 목표를 세웁니다.


무너진 둑을 다시 쌓고, 말라버린 수로에 물을 흐르게 했던 그들.

농어촌의 생존을 위해 묵묵히 땀 흘린 농민들과 한국농어촌공사.

그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풍요는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물을 흐르게 했고,

쌀을 심었으며,

미래를 키워냈습니다.


농업은 생존이었고, 희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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