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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사랑방 - 탈북계기
  • 작성부서|농어촌연구원
  • 작성자|백승오
  • 등록일|2021-11-05
  • 조회수|238
게재일 2021-09-05 관련사업 기타사업
사이버 홍보 노출 여부 보도실적 등록 여부 등록

MC 통일사용설명서.
북한의 다양한 모습을 들여다보는
평양사랑방입니다.
이 시간은
농어촌공사농어촌연구원 김혁연구원과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1. 김혁 연구원은 2001년에 탈북을 하셨는데, 물론 북한에서의 꽃제비생활이 힘들었기도 했겠지만, 탈북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뭐였습니까?
- 중국을 오가다가 잡혀서 교화소에 들어갔다. 1년 8년형을 받았다.
- 그나마 탈북이 정치범에서 경제범으로 바뀌어서, 1년 8개월. 아니면 3년. 공개처형 대상도 될수 있다. 탈북은
 
2. 북한의 교화소는 한국의 교도소같은 곳인가요?
- 무임금 노역을 한다. 그런데 1년 8개월을 노역을 한건 아니고. 재판을 받기까지 1년을 감옥에서, 이후 8개월을 노역했다.
- 당시 23명이 잡혀들어갔는데, 21명이 죽고. 나를 포함해 2명만 살아남았다.
- 그만큼 힘들었다. 노역보다 감금이 힘듬
 
3. 국경을 넘었단 이유로, 교화소에서 1년 8년형을 살았는데. 다시 탈북을 할 생각을 한다?? 두려움이 컸을 것 같은데요. 그 상황에서 어떻게 탈북을 감행하게 됐습니까?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 탈북을 감행했을 당시의 심정.
 
4. 한번 국경을 넘었기 때문에, 김혁연구원에 대한 감시도 삼엄했을 것 같은데요.
- 그렇다. 교화소에서 허약해진 몸을 추스르던 상태. 온 몸이 부운채로 두만강을 건넜다. 교화소에서 고생을 해서, 100미터 가다 쉬고. 100미터 가다 쉬고. 18-19살 나이였지만, 당시 나의 몸무게는 30킬로그램대였다.
 
5. 한몸 가누기도 힘든 상태에서 국경을 무사히 넘으셨습니까?
- 국경을 넘어.
- 중국에서 숨어지냈다.
- 다시 잡히면, 1년8개월 형으로 끝날 일이 아니었기에 필사적으로 숨어지냈다.
 
6. 어렵게 국경을 넘었지만, 한국행을 결심하고 실행까지 또 적지 않은 난관이 있었을텐데요. 중국에 남아야겠단 생각은 들지 않으시던가요?
- 중국에선 평생 산에서 숨어 살아야
- 이미 한국으로 가야겠단 생각. 한국의 현실 많이 접하고 동경 등이 생겨서...
 
MC 평양사랑방
오늘은 북한에선 꽃제비로,
한국에선 꽃제비 연구와 남북한 농어촌교류를 연구하는
연구원으로 활약하고 있는
김혁연구원과 얘기 나눠봤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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