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양사랑방 - 한국생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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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재일 | 2021-08-22 | 관련사업 | 기타사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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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통일사용설명서.
북한의 다양한 모습을 들여다보는
평양사랑방입니다.
이 시간은
농어촌공사농어촌연구원 김혁연구원과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1. 2001년 19살의 나이로 탈북해, 한국에 오셨는데. 처음에 한국사회에 적응하기까지 어려운 점도 적지 않았을 것 같아요. 초기에 정착금 같은 건 지원되죠.
- 처음에 하나원으로부터 독립했을때의 기분 심정 등. 하나원에서 2개월. 그땐 일시불로 줬다. 정착금 2100만원.
2. 북한과는 물가가 달라서, 2100만원이란 상당히 크게 느껴지셨을 것도 같은데요. 어땠습니까? 또, 정착금을 어떻게 사용했나요?
- 2100만원이 통장계좌에 찍힌 걸 보고, 어떤 기분이 들었다.
- 정착금은 어떻게 사용했나. 700만원은 집보증금. 400만원은 살림장만
- 나머지 1100만원으로 여행을 했다. 3개월간
3. 그돈으로 여행을 했다고요? 돈이 다 떨어지면 생활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 여행을 꼭 해보고 싶었고. 한국 여기저기. 어렸을적 가보고 싶었던 놀이동산도 가서 원없이 놀아봤다. 돈을 다썼지만. 암담하지 않았다. 1100만원으로 난 많은 걸 배웠다. 한국에서 생활하는 법. 버스타는 법 기차타는 법. 한국의 문화 등등을 3개월의 여행으로 다 깨우쳤다. 수중에 가진 건 없었지만, 두렵지 않았다. 대한민국에 적응하고 정착하기 위한, 자본주의에 대한 과외비였다.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고, 돈버는 게 쉬운 일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4. 그래서, 취직을 하셨고요?
- 여행을 다녀오자마자 정부에서 연계해주는 직장에 취직했다. 아이스크림공장 새벽4시부터 오후4시까지
- 취직하면서 일을 할때의 심정. 당시 느꼈던 절망감이나 행복감
- 북한에서 17살부터 벌목공을 했다. 그에 비하면 덜 힘들어.
5. 언제까지 아이스크림공장을 다니셨고. 공부는 언제 시작한 건가요?
- 아이스크림공장 다니다가 배를 탔다. 돈을 많이 준다기에.
- 어쩌다 대학갈 결심.
- 대학 다니면서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6. 정착하기까지 쉽지 않은 시간들을 보냈는데, 지금 한국에서의 삶, 만족하십니까? 탈북한지도 20년이 지났는데, 가장 좋은 점은 뭡니까?
MC 평양사랑방
오늘은 북한에선 꽃제비로,
한국에선 꽃제비 연구와 남북한 농어촌교류를 연구하는
연구원으로 활약하고 계신
김혁연구원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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